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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짧은 진료시간 동안 미처 나누지 못하는 환우들의 현실적 삶과 개인적 고민을 회원들께 들려드리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실제 뇌전증을 앓고 있는 최상원 대표(환우회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따사모)와 뇌전증 자녀를 둔 허도경 대표(소아 뇌전증 환우 부모회)의 뇌전증 관련 고충을 가감 없이 들어보고, 치료적 성과 외 뇌전증 환우의 사회적/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회원들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소아뇌전증환우부모회’ - 허도경 대표

장애인활동보조 가족지원허용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올해 20살이 된 뇌전증과 뇌병변(영구)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아이의 병수발로 인해 부부 중 한 명은 오롯이 아이를 위해 매달려 지내야 하며 그로 인한 그 가정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바닥을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중략>

장애인가족에게 가장 절실한 지원은 "장애인가족이 활동보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장애인가족 활동보조 허용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이며 장애인에게 직계가족만큼 편안한 활동을 보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직계가족이 활동보조인으로서 일을 하고 수당을 받는 것은 활동보조인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국회에서는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노인요양보호서비스는 가족이 돌보는 게 합법적으로 되어 있어서 등급별로 급여를 인정 받고 있는데 왜 자식이 아프면 그 부모가 24시간 케어를 하고 급여를 인정 받지 못하는 걸까요?

활동 보조인을 구하기 어렵고 활동보조인이 있어도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할 정도로 장애의 정도가 심한 경우 중증 장애인을 둔 가족은 경제활동을 중단함으로써 이중, 삼중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우리 삶입니다.

대통령님..
얼마전 어느 지역 시장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가족이 있는데 왜 국가가 장애인 돌보나”
“부모가 잠을 자기 위해 활동 지원사를 쓴다”
“부모가 안방에서 자기 위해서 활동 지원사를 24시간 붙이는게 과연 정의로운 나라인가?”

언제부터 장애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의 도움을 받으면 안됐던가요?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가요?

내 자식 중 어느 누군가가 장애가 있다면 오롯이 그 고통과 힘듦을 업보라고 생각하고 내가 짊어지고 평생 국가의 돌봄에 대해 그 혜택을 바라는 건 해서는 안 될 생각인건가요?
이런 나라가 과연 복지를 위해 그리고 그 장애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해 떳떳하게 했다고 하실 수 있으세요?

중증 장애인 가족에게 가족의 활동 보조를 허용하도록 관계 법령이 개정 되도록 다시 한번 더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중증 장애인 부양으로 인해 생계수입이 없는 가족에게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건강한 가족생활이 영위 될 수 있도록 대통령님...꼭꼭꼭 노력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세요.

2020년 7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운영 정책에 따라 30일 이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만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을 받을 수 있지만, 이 글은 약 1만 3천여명이 동의한 것에 그쳐 그대로 청원이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20만명을 모으겠어요. 알면서도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우리의 의견을 들어주는 창구가 하나도 없어요. 고민 상담을 해주는 티비 프로그램도 신청했지만 그것도 떨어졌고, 후원금이라도 모집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제발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소아뇌전증환우부모회 허도경 대표의 목소리는 비장했습니다. 단 몇 마디 만으로도 그 동안의 삶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울분으로 가득 찬 억겁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허도경 대표의 삶은 20여년 전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마비되었습니다. 뇌 손상으로 인해 평생 누워 지내야만 하는 아들을 위해 그녀는 모든 생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남편은 퇴근 후 다른 일을 병행해야만 했습니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카드 돌려 막기는 기본이고, 내 집 마련은커녕 있던 집도 팔아야 하는 실정이죠. 뇌병변장애나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빚더미에 앉아 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애 살려야 한다는데, 안 할 수 있나요?”

‘이제 제발 숨 좀 쉬고 싶다.’며 가슴 속에 날카롭게 박힌 응어리들을 토해 내는 소아뇌전증환우부모회 허도경 대표를 만났습니다.

생업을 포기한 장애 아동 부모들에 대한 지원 법적 마련 절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줄 주간보호센터 설립이 가장 시급해

첫 번째 화두는 앞서 기술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장애인 활동 보조’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자식을 핑계로 돈벌이를 한다니요, 우리 애들은 학교도 못 가고, 돌봐주는 곳 어디 하나 없어 부모는 생업을 포기하고 아이를 24시간 돌보고 있는데 그럼 아이들의 치료비는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나라에서 좋은 명목으로 재난 지원금도 나눠주면서, 왜 중증 장애 아동을 돌보는 부모들에 대한 지원은 불법이라고 하는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린가요?”

설상가상으로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보험적용에서 제외되어, 입원비며 약값이며 고스란히 모든 비용을 부모가 떠 안아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가정이 깨진 경우도 허다하고, 두 세 개의 직업을 병행하며 인생의 모든 시간을 아이의 치료에 쏟아 붓는 부모들의 삶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엄마들 우울증이 심해요. 어떤 날은 전화가 와서 ‘언니, 나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했다.’며 울부 짖는 날도 있고요. 하지만 아이 돌보고, 치료비 충당하는 것만으로 벅차 부모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보는 건 그야말로 사치죠.”

그렇다면 부모들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시설이 없냐는 질문에 허도경 대표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언제부터 차별을 받을까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어린이집부터예요. 애가 멀쩡해 보여도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상담할 때 질환을 밝혀야만 하는데, 그럼 바로 죄송하지만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오죠. 장애인 전담 어린이집은 어떨까요? 대기만 3~4년이고, 기다리다보면 초등학교 가야 할 나이가 돼요. 초등학교에 가면 어떨까요? 학부모들이 같은 반에 넣어주지 말라고 해요. 특수반에 가도 선생님들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대응이 힘드니까 아예 특수 학교 가라고 하죠. 그럼 또 대기하다가 시간 다 보내고, 운좋게 특수 학교를 졸업한다고 하더라도 20세가 되면 정말 갈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어요. 장애 복지관도 뇌전증이면 중증이라고 안받아주고 있고요. 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도 우후죽순으로 다 생기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죠?”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성인이 되어도 받아 주는 곳이 없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돌보느라 생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부모들, 그야말로 악순환의 반복이었습니다.

때문에 허도경 대표는 주간 보조 센터가 가장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뇌전증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주간 보조 센터를 만들어 달라고 수없이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에요. 한 구에 하나씩 설립하는 것이 너무 무리면, 지역에 한 두개라도 지어져서 주중만이라도 아이들을 돌봐준다면 부모들이 경제 활동이라도 할 텐데, 아무리 청원글을 올리고 국회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학회에 요청해도 늘 제자리죠.”

‘시급한 것은 알고 있다.’는 도돌이표 답변에 이제는 이골이 난 허도경 대표는 ‘이제는 추진을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주간보호센터만 만들어 주면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엄마들도 많아요. 약사, 의사, 화가, 사회복지사, 간호 조무사 등 다양한 경력과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생기기만 하면 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이죠. 우리 엄마들은 지금 머리 깎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차분한 말투였지만 허도경 대표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절규에 가까웠습니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실낱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외롭고 고독한 뇌전증 환아 부모들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환아와 부모들을 진짜로 위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첨단 검사와 새로운 치료가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이어온 세월이 어느덧 20년,
반복되는 상처와 생체기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환아 부모들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 마음들을 대변해 의료진들에게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습니다.

“한 번은 어떤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담당 의사에게 힘든 마음을 토로했더니 ‘엄마가 그렇게 낳지 않았냐.’고 했다면서. 우리가 많은 거 바라는 거 아닌데, 부모들에게는 아이 상태나 치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의학 용어 쓰면서 인사도 없이 진료 빨리 보고 내보내는 것에 급급해요. 우리는 그저 돈벌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최근 들어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환우나 부모들의 정서적인 부분까지 신경 써주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오래 전부터 서서히 꼬여 이제는 너무 꽉 묶여 버린 소통의 매듭을 풀기엔 아직 많은 시간과 서로 간의 노력이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한 번은 뇌전증 지원법 때문에 국회의원, 의료진이 국회에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들의 의견이 필요한 자리라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는데, 겉도는 이야기만하다가 결국 시간이 없다고 부모들의 의견은 나중에 듣겠다며 종료가 됐어요. 그냥 그들에게는 자리 채울 머릿수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죠.

최근 의료계에서도 뇌전증 환우 가족들의 심리적 정서적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전문 상담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과연 책으로만 배운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진료를 볼 때마저 상처가 허다한데, 진짜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9월, 언론을 통해 뇌전증의 최첨단 진단 치료 장비인 뇌자도와 로사(ROSA) 수술 로봇의 국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로의 장이 열릴 것이란 희망적인 소식을 앞두고 허도경 대표는 간곡히 부탁 했습니다.

“전선에서 의료진들이 노력해 주신 덕분에 두 장비의 도입을 앞두고 있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디에 설치가 될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정한 곳에 설치가 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비용 부담과 지역적 거리로 인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은 제한적이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디 환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도록 애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전날 밤, 허도경 대표와 남편은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딱 우리가 죽기 전에 우리 아이가 하늘 나라로 먼저 떠났으면 좋겠다.’고요.

*뇌전증학회에 바랍니다*
01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직계가족에게 활동보조 혜택이 지원될 수 있도록 정책 개선
02 부모들이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역구 내 주간 보호 센터 설립 추진
03 환우 부모들과 의료진이 소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창구 마련
04 최첨단 검사와 치료가 도입된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소외 받는 환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 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