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과 문화

ECT가 왜 조현병에 효과가 있을까?(2)
- 신경과 의사들에겐 도전 과제
- 박지욱 (박지욱신경과의원 원장(제주시))

• 전기 유발 경련치료법의 등장


우고 체를레티. 위키백과 자료.

전기 경련요법 즉 ECT는 1938년에 로마의 신경-정신의학자인 체를레티(Ugo Cerletti; 1877~1963)와 비니(Lucio Bini; 1908~1964)가 개발했다. 체를레티는 파리의 마리(Pierre Marie), 뮌헨의 크래펠린(Emil Kraepelin)과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하이델베르크의 니슬(Franz Nissl) 같은 대가들을 직접 찾아가 스승으로 삼고 배웠다.

체를레티는 1928년에 로마대학교 신경-정신과 과장이 되었고, 이곳에서 전기경련치료법을 개발한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는 가축을 도살하기 전에 머리에 전기 충격을 주어 기절시키는 것을 보았다. 기절한 동물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므로 인부들은 손쉽게 목을 딸 수 있다(지금은 전기충격을 주어 기절시킨 후 혈관을 따서 피를 흘리는 방법으로 도살한다). 물론 전기 충격을 받은 가축은 경련도 했을 것이다.

체를레티는 이 현장을 보고 전기와 경련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개의 몸통 양끝에 전극을 연결해 전기를 흘려보냈는데, 전기가 통하자 개는 바로 죽어버렸다. 첫 실험에서 체를레티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전기는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 그리고 강한 전기는 동물을 즉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이 경련만 일으킬 정도의 적절한 세기를 확실히 알아야 했다.

그 무렵, 경찰이 기차역을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을 체포해서 체를레티에게 데려온다. 체츨레티가 그를 진찰을 해보니 정신병 증상도 있었다. 메두나 이후로 정신병 환자들은 (화학)경련요법를 받아왔고, 체를레티니 역시 이 치료가 정신병에 효과가 좋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체를레티는 메트라졸이 아닌 전기로 경련요법을 시도한다. 비니와 함께.

기차역을 떠돌던 부랑자(浮浪者)는 본의 아니게 11회의 전기경련요법을 받았고, 다행히 나아서 퇴원했다. 체를레티는 이 실험을 통해 임상에 사용할 안전한 전기의 세기를 정했다. 환자의 머리에 전극을 대어 100V/200mA를 흘려주면 안전하게 대발작(grand mal)을 일으키는 데 충분했다.

1940년대에 접어들면 환자들은 더 이상 캠퍼나 메트라졸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었다. 전기면 충분했다. 전기는 신속하고 편리하고 효과도 좋았다. 더구나 일시적인 기억상실증도 일으키기에 환자들은 자신이 전기경련요법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치료에 대한 악감정이나 거부 반응도 없었다. 급성 조현병, 양극성장애, 주요 우울 삽화 환자들이 치료 대상이었다.

• 맺음말 참으로 신기한 것은 경련 유발이 정신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지금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뇌의 화학에 어떤 변화를 주는 것으로 짐작만 할 따름이다. 우울증이 좋아진다는 것은 세로토닌에 어떤 변화를 주는 걸까? 조현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도파민 체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일까? 한 번 하면 일시적이지만 10회, 20회를 하면 치료 효과가 오래 간다는 말은 시냅스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걸까?

그도 저도 아니면 작동이 원만하지 못한 컴퓨터를 껐다가 켜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아니면 약으로 잘 듣지 않는 부정맥 환자에게 제세동치료(defibrillation)를 해서 심장박동을 바로잡아주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그나저나 이렇게 이유도 모르고 치료를 해도 맞는 걸까? 하지만 그것은 걱정할 것 없다. 원리를 모른다고 치료의 근거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원리를 몰랐지만 키나나무 껍질을 말라리아 치료제로 수 백 년을 썼다. 바이러스란 개념도 없던 시대부터 우두법으로 두창을 예방해왔다. 결핵치료제가 나오기도 전에 환자들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시키며 영양 보충을 해주었다. 물론 모두 효과가 좋았다.

다만 이 오래된 치료법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면 더 많은 응용 분야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과 인체에 대한 우리의 비밀도 밝혀낼 수 있다. 어쩌면 ECT 연구를 통해 어쩌면 뇌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신경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환자의 뇌를 연구해서 정상 뇌의 작동 원리를 알아낸 경우는 얼마든지 많다. 브로카(Paul Broca;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신경학자)는 실어증 환자의 연구를 통해 ‘말하는 뇌’를 찾았다. 뇌 수술 후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를 통해 해마의 기억의 기능을 알았다. 전두엽을 다친 환자를 통해 침묵하는 전두엽의 고차원적인 기능도 알게 되었다.

메두나의 잘못된 가정 즉, 뇌전증과 조현병 환자 뇌에서 교세포 농도가 정반대라는 관찰에서 시작했지만-과학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ECT는 여전히 매력이 있는 신비로운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나 약물 중에서 ECT 보다 더 모르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ECT에 대해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ECT 연구는 누가 해야 할까? 아니, 누가 하면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바로 신경학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뇌전증 환자를 돌보고 뇌의 전기 생리에 익숙한 뇌전증 연구자들이다. 그러니 ECT를 남의 일이거니 생각하지 말고 관심 한번 가져 보시길 바란다. 인간 뇌의 오래된 비밀이 ECT를 통해 풀질 지 도 모른다. 누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 독자 여러분의 의견이나 피드백 환영합니다! yosoolpiri@gmail.com

 

작가소개)
2006년과 2007년에 <한미수필문학상>을 받았고, <메디컬 오디세이(2007년)>, <신화 속 의학 이야기(20014년)>,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2015년)>를 책으로 썼다. 대한신경과학회 소식지, 사이언스타임스, 청년의사, 의협신문, 메디포뉴스, 중앙일보, 한라일보, 국제신문, ..등에 연재를 하고 KBS1라디오에서 대중들에게 의학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