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

ECT가 왜 조현병에 효과가 있을까?(1)
- 신경과 의사들에겐 도전 과제
- 박지욱 (박지욱신경과의원 원장(제주시))

• 기억 눈에 잔뜩 힘을 준 청년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지 병동 도우미의 부축을 받고 걸어갔다. 오더리는 그를 부축한다고 하기 보다는 단단히 결박을 한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당도한 곳은 <ECT방>이었다. 늘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던 ECT, 오늘은 학생들이 참관하게 되었다. 환자 뒤를 따라 실습생(PK)인 우리들도 조심스럽게 '그 방'으로 들어갔다.
조현병으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 중인 이 청년은 체격도 건장하고 활달한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태가 조금 불안정해 보였다. 의료진은 그에게 ECT를 하기로 결정했다. 청년은 뉘어지고, 몸은 단단히 묶였다. 사전 처치를 하고 이윽고 머리에 전기를 흘려보냈다. 우-욱하는 소리, 온몸의 경직과 이어지는 팔다리 떨기, 푹-푹-하는 소리와 입에 생기는 하얀 거품, 그리고 환자복을 적시는 소변, …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버리는 환자. 치료가 끝나자 청년은 훨씬 얌전해진 안색으로, 이번에는 오더리의 결박이 아닌 부축을 받고 치료실을 나섰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소변이 질질 흐른다. "환자들은 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요. 후향성 기억상실이 오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방으로 데리고 오는 걸 알면 기겁을 합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것 같아요." 환자를 시술했던 정신과 전공의는 이렇게 의학적인 설명을 해주었지만, 나는 조금전부터 욕지기가 나는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경련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도 셀 수도 없이 많은 경련을 봐야 한다는 걸. 전기경련치료(electroconvulsive therapy, electroshock therapy)는 전기로 환자에게 경련을 일으키는 시술로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치료에 쓴다. 경련은 신경과 의사의 영역인데, 이를 이용한 치료는 아쉽게도 정신과 의사의 소관이다. 그래서 신경과 의사는 ECT를 해본 적이 없겠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 필자도 ECT 시술 현장을 목격한 것이 학생 때 정신과실습을 돌면서였다. 물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오늘은 신경과 의사들은 잘 모르는 ECT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 약물 유발 경련으로 조현병 치료 시작 1930년대에 부다페스트에서 정신과 의사로 신경병리학도 연구하던 메두나(Ladislas J. Meduna;1896~1964)는 아주 특이한 현상을 관찰했다. 뇌전증이나 조현병 환자들의 뇌 병리 표본을 연구해보니 뇌의 교세포(glia) 농도가 뇌전증 환자는 정상보다 높고, 조현병 환자는 그 반대로 낮게 나왔다. 이유는 잘 몰랐지만 적어도 교세포 농도만 놓고 보았을 때 뇌전증과 조현병은 정반대의 질병으로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해서였을까? 조현병 환자들은 경련을 잘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실제로는 뇌전증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조현병 발병 비율이 높다). 심지어는 조현병 환자가 경련을 하고 나면 조현병 증상이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혹시 조현병 환자에게 일부러 경련을 일으켜 조현병을 치료해볼 수 있지 않을까?

경련을 일으키는 병, 뇌전증은 오래된 병이었다. 하지만 치료약이 등장한 역사는 짧았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브롬화칼륨(KBr)을 경련약으로 썼고, 최초의 '경련억제제'인 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은 1912년에 나왔다. 듬직한 항경련제는 페니토인(phenytoin)은 몇 년이 지난 1938년에 나올 예정이므로 경련 그 자체만으로도 의사들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경련을 일으키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스트리크닌(strychnine), 테바인(thebaine), 카페인(caffeine) 같은 '흥분성' 약물은 경련을 일으켰다. 메두나는 여러 화학물질들 중에서 캠퍼(camphor)를 '경련유발제'로 선택했다.

장뇌(樟腦)로도 번역하는 캠퍼는 녹나무(camphor)수지로 만든다. 자극적인 향기가 나서 향신료나 방부제로 써왔다. 서양의 문학 작품에서 보면 기절한 사람들에게 캠퍼 향을 맡게 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캠퍼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데, 물파스의 톡 쏘는 향의 정체가 바로 캠퍼다.

경련을 일으키는 병, 뇌전증은 오래된 병이었다. 하지만 치료약이 등장한 역사는 짧았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브롬화칼륨(KBr)을 경련약으로 썼고, 최초의 '경련억제제'인 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은 1912년에 나왔다. 듬직한 항경련제는 페니토인(phenytoin)은 몇 년이 지난 1938년에 나올 예정이므로 경련 그 자체만으로도 의사들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경련을 일으키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스트리크닌(strychnine), 테바인(thebaine), 카페인(caffeine) 같은 '흥분성' 약물은 경련을 일으켰다. 메두나는 여러 화학물질들 중에서 캠퍼(camphor)를 '경련유발제'로 선택했다.

장뇌(樟腦)로도 번역하는 캠퍼는 녹나무(camphor)수지로 만든다. 자극적인 향기가 나서 향신료나 방부제로 써왔다. 서양의 문학 작품에서 보면 기절한 사람들에게 캠퍼 향을 맡게 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캠퍼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데, 물파스의 톡 쏘는 향의 정체가 바로 캠퍼다.

1934년에 메두나는 캠퍼를 조현병 환자에게 쓰기 시작한다. 모두 26명의 조현병 환자들이 경련유발치료를 받았는데, 적어도 절반의 환자들에겐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메두나는 곧 캠퍼 대신 메트라졸(Metrazol; pentylenetetrazol;PTZ)로 경련유발제를 바꾼다. 근육 주사 후 15~45분을 기다려야 경련을 일으키는 캠퍼에 비해 메트라졸은 정맥 주사 직후에 경련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메두나의 <경련유발치료법>연구 결과를 1935년에 논문으로, 1939년에는 자신이 집필한 교과서에 실었다. 조현병 환자의 경련유발치료는 널리 퍼졌고, 조현병 역사상 처음 등장한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메트라졸은 부작용이 있었다. 원래 약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물인 탓에 메트라졸 주사를 맞으면 흥분과 불안이 나타났다. 그 때문인지 환자들은 이 주사를 너무 싫어했다. 주사만 보면 줄행랑을 치는 환자들을 붙잡아 혈관으로 주사해야 했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경련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서 의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깔끔한' 전기였다.

- 다음 호에 계속

- 독자 여러분의 의견이나 피드백 환영합니다! yosoolpiri@gmail.com

작가소개)
2006년과 2007년에 <한미수필문학상>을 받았고, <메디컬 오디세이(2007년)>, <신화 속 의학 이야기(20014년)>,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2015년)>를 책으로 썼다. 대한신경과학회 소식지, 사이언스타임스, 청년의사, 의협신문, 메디포뉴스, 중앙일보, 한라일보, 국제신문, ..등에 연재를 하고 KBS1라디오에서 대중들에게 의학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